2010/05/08

Lotus 스토리 (1)

SuperSeven 의 아버지...Colin Chapman







콜린 채프먼은 1945년에 런던에 있는 대학에서 구조공학/항공기제조를 공부하고 있었다.

이때 그는 수입원으로 중고차 매매를 하고 있었으나 중고차매매를 그만 두게 되면서 팔다 남은 1930 년식 Austin 7 을 처분하지 못하고 그냥 스포티 하게 개조하게 되었다.

그는 대학에서 공부한 지식-샤시가 받는 스트레스와 그 스트레스를 상쇄하기 위한 구조 등등-을 Austin 7 개조에 응용하였만 당시 대부분의 자동차 디자이너들은 이런 구조공학적인 부분에는 그리 신경쓰지 않았다고 한다.


그의 이 첫번째 자동차는 나중에 Lotus Mk. 1 이라고 이름 붙여지게 된다. 그는 자동차 제작을 여자친구였던 Hazel Williams 의 아버지 차고에서 했고(여자친구네 집 차고를 빌려서 뚝딱뚝딱 하다니...--; ) 1948년도에 OX9292 로 차량 등록을 하였다.




채프먼과 그의 파트너였던 여친(^^:) Hazel 은 이 차량으로 경주에 참가하여 성공적인 성적을 냈다고한다(진창에서 하는 Trial 경기-off road 바이크 경기 생각하시면 될듯.).




그가 군대에 복역할때 그는 RAF(Royal Air Force) 에서 비행기 조종을 배웠고 나중에 전 세계의 그랑프리 써킷을 돌아다닐때 잘 써먹게 된다.


군대에 있으면서 짬이 날때마다 (왕널널??) 또다른 Austin 7 샤시를 베이스로 Lotus Mk. 2 를 제작하였다.







그는 제대후 1950년에 British Aluminium 에 제조엔지니어로 취직한다.

주말마다 750 Motor Club (아마 750cc 엔진을 의미하는 자동차 클럽인가보다. 참고로 Austin 7 도 750cc) 활동을 하였고 제대로 레이스에 참전 한 후 Dudley Gahagan 이라는 사람의 Type 37 Bugatti 를 제치고 채커기를 받으면서 Trial 경기가 아닌 On-road 경기에서 다른 차들을 제칠 수 있는 차량 제작에 불타오른다나...




그래서 그의 Mk. 2 를 팔아버리고 새로운 차량 제작에 돌입한다.



그렇게 해서 새로운 1930년식 Austin 7 으로 circuit racing 을 목표로 새로운 차량-Lotus Mk. 3-을 제작한다.





--750 Motor Club 의 친구와 Lotus Mk. 3를 설계중인 채프먼 --






-트랙위의 Lotus Mk.3 -




Lotus Mk. 3 는 Mk.4 로 대체되었고, 그 다음 써킷 레이서가 될 예정이었던 Mk. 5 는 완성되지는 못했다.


그는 생계를 위해 750 Motor Club 멤버들에게 튜닝부품을 팔기도 했지만 그가 꿈꾸던 레이싱 팀을 꾸려나가는데는 역부족이었다.


여자친구네 집에 빌붙어(--;)있던 그의 공장은 이후 그의 아버지인 Stan Kennedy Chapman 의 소유인 런던에 있는 Railway Arms Hotel(아니..호텔 사장 아들이 여자친구네 집에 빌붙어 살았다니...--;)로 이사와 새로운 공장을 차리게 된다.




1953년 1월에 약혼녀인 Hazel 의 돈으로 (끝까지...--;) the Lotus Engineering Company 를 설립하고 54년도에 둘이 결혼에 골인하게 된다..




.....to be continued

최초의 Ground effect







사진의 F1 경주용 차가 바로 Lotus 78-John Player Special Mk.III 로 베르누이의 정리인 "유체의 압력은 유체의 흐르는 속도가 빠른 곳에서는 낮아지고 느린 곳에서는 높아진다" 를 최초로 실현한 레이싱 머신입니다.


차체 바닥의 공기를 보다 빠르게 흐르게 한다면 차체 바닥의 압력이 낮아지고 차체를 도로에 쫘~악~ 달라붙은 채로 달릴 수 있게 해 주게 되어 보다 높은 성능을 이끌어 낼 수 가 있었지요.
네.. 차량에 베르누이의 정리를 적용해서 얻은 효과..."Ground effect" 의 창시(?)였죠.
이렇게 바닥에 껌딱지 처럼 들러붙어 무서운 속도로 코너를 돌아 나가다 보니 다른 차량들과는 차원이 다른 코너링을 보여주게 되었고 자동차 공학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 모델입니다.


뭐 이 차량이 최초의 시도는 아니었다고 하더군요. BRM 팀의 Tony Rudd 가 스케일 모델로 풍동실험을 60년대에 이미 시행 했지만 결과는 꽝이었다고 하고(뭐 이론은 완벽한데 당시 기술이 문제 였겠지요..) Brabham 과 McLaren 이 차체 밑에 에어댐을 달아 실험했지만 역시 실패...


이 "Ground effect" 를 77년이 되어서야 실전에서 실현시킨 최초의 모델이 바로 Lotus 78 다른 이름으로 John Player Special Mk. III. 입니다.
두번째 첨부사진에 나온 그림대로 sidepod 가 뒤집힌 날개의 모양을 띄고 있으면서 다운포스를 일으키고(요것만으로는 말짱 황이죠...) 사이드포트의 양 옆을 side skirt 로 막아(완전한 유체가 흐르는 터널의 형성..요것이 핵심.) 차 옆의 공기로 인해 그라운드 이펙트가 없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설계였던 것입니다.


시간이 감에 따라 이 그라운드 이펙트에 대한 독보적 기술은 진보해서 'open wheeler' 로서는 가장 아름답다..라는 말을 듣는 Lotus 79 / J.P.S. Mk. IV / Black Beauty 이 탄생합니다.
그러나 너무나 비약적으로 올라간 성능으로 인해(다른 팀들이 이 기술을 완성시킨 연도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.. ^^) 코너링 속도가 살인적으로 올라가게 되고 대형 사고들이 연이어 터지면서 (Gilles Villeneuve가 -페라리팀 드라이버, 역사상 가장 빨랐다고들 말하는 전설적인 드라이버- 벨기에 졸더에서 연습도중 사망한 것이 가장 큰 계기였다고 함.) 이 뒤집힌 날개식의 차체바닥과 사이드스커트의 사용이 금지 되었고 이때부터 편평한 차체바닥과 차체 후미의 디퓨저만이 허락되었습니다.
뭐 요즘에도 여전히 '성능' 은 계속 올라가 속도는 올라가기 바쁘고 '규정'을 새로 계속 고쳐 나가면서 머신 속도 떨어뜨리기에 급급 하지만.......
...............아무튼 지금은 '상식' 처럼 통하는 그라운드 이펙트를 최초로 실전에서 써먹은 머신이 바로 lotus 78 입니다.